황민화는 조선인들 내부에서도 정체성 투쟁을 가속화했다. 화신상사의 태평양 전승 기념 광고. “싸우는 남성, 아름다운 여성.” ‘춘추’, 1942년 7월. 갈무리 제공


2005년 권명아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가 ‘역사적 파시즘’(책세상)이라는 책을 선보였을 때 일각에서는 불편함을 드러냈다. “한국이 어딜 봐서 파시즘 사회냐”며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들도 있었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파시즘의 징후를 읽어내는 이가 드물었던 탓이다.
그해 한국 사회는 황우석 사태라는 홍역을 치렀지만 주가가 10년 9개월 만에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모바일야마토 , 1인당 국민소득은 2만불에 바짝 다가섰다. ‘우리’는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모두 이뤘다는 자부심이 있었고, 대개 불안을 예견하기보다 낙관하는 쪽이었다. 하지만 타자에 대한 배제와 혐오는 갈수록 극심해졌거니와 지난해 윤석열의 12·3 계엄 사태를 거치면서 한국 사회는 ‘파시즘’이란 단어를 마침내 전면적으로 마주하게 됐다. 그간 절판된 ‘역사적 파시즘’을 다 릴게임추천 시 내달라는 요구가 쏟아졌던 이유이기도 하다.



역사적 파시즘 체제의 인종주의와 젠더 정치 l 권명아 지음, 갈무리, 3만원


‘역사적 파시즘 체제의 인종주의와 젠더 정치’(갈무리)는 저자가 20년 만에 ‘역사적 파 골드몽사이트 시즘’을 새로 쓰다시피 한 전면 개정증보판이다. 한국, 일본, 중국, 영미권의 텍스트까지 4개국어를 넘나들며 잡지와 영화 등 각종 자료수집과 선행연구를 거쳐 저자는 전시 동원체제가 가진 스펙트럼의 마지막 조각을 채워 넣어 완결했다. 이번 책에 새로 포함된 5부에선 중국-조선의 밀접한 관계와 이를 떨어뜨려 놓으려는 일제의 책략을 다루면서 파시즘의 핵심인 인종 골드몽릴게임릴게임 주의에 대한 연구를 심화시켜 선보인다.
‘역사적 파시즘’이란 양차 세계대전을 아우르는 시대를 가리킨다. 이 책은 만주사변에서 아시아 태평양 전쟁까지 일제 말기 전시 동원체제를 중심으로, 이 ‘역사적 파시즘 체제’가 어떻게 한국인들의 일상을 조직했고 오늘날과 어떤 식으로 연관되는지를 밝혔다. 저자는 파시즘 체제하의 집단적 광기를 ‘고립감의 야마토게임무료다운받기 총합’으로 규정한다. 파시즘화의 가장 큰 징후는 연대 가능성의 파괴와 개개인의 고립화라는 뜻이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광기가 휘몰아치는 것이 파시즘 체제다. 통상 한국에서는 파시즘이 가진 집단주의적 경향에 집중하지만 저자는 “경쟁 체제, 증오심, 박탈된 자의 원한 같은 자본주의 체제의 특정한 면모”가 파시즘의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사실 이처럼 주체할 수 없이 상대를 향해 들끓는 적개심은 원인 모를 감정, 정서에 가깝다. 더 정확하게는 단순한 감정이나 정서를 넘어선, 특정하고도 강력한 힘을 가리키는 ‘정동’(affect)의 문제로 파악할 수 있다. 파시즘 체제에 합류하게 되는 내적 요인은 경쟁에서 이기고 남을 딛고 올라서려는 욕망의 문제다.
이런 파시즘 증오 정치의 핵심에는 인종주의와 젠더 정치가 있다. 파시즘은 증오의 정동을 정치 수단으로 동원하고 인종, 젠더, 세대, 계급 등에 따라 사람들을 촘촘하게 재배치하면서 서로 적대시하도록 만든다. 파시즘의 정치학은 성별 이분법을 강력히 지지하며, 전통적 가족 가치와 수호를 주장하고, 이질적이고 오염된 것을 정화하는 국가상을 갖는다. 뒤섞이는 것에 대해 공포를 갖기에 순혈과 순결을 강조하며, 혼혈과 잡종적인 것에 대한 공포와 혈통주의를 강박적으로 갖고 이런 감각을 자극한다.



불량함은 ‘가정’의 탓으로 여겨졌다. ‘불량 소년소녀는 어떤 가정에서’, ‘보도월보’, 1934년 5월. 갈무리 제공


전시 동원 체제에서 일본 제국과 총독부는 국가가족주의의 틀 속에서 조선인의 황민화 과정을 추진한다. 아들이나 남편을 전장에 보낸 ‘총후부인’(銃後婦人), 청년 등 파시즘적 주체로 거듭나도록 했다. 새로운 주체 형성은 타자의 배제로 이뤄진다. 이를테면 파시즘적으로 쇄신된 새로운 엘리트 청년의 탄생은 타락한 근대적 남성 지식인의 반대편에서 만들어지고, 후방의 희생적인 총후부인 정체성은 사치와 향락을 일삼고 문란한 신여성과 대립된다.
특히 총후부인 정책과 담론에서 ‘스파이’와 연관시킨 부분이 상당히 흥미로우면서 섬찟하다. 조선에서 스파이 담론은 1930년대부터 유행했고 “트렁크에, 코트 속에 탄환을 감추고 있는 괴상스러운 중국 미인” 같은 담론과 뉴스는 이른바 ‘레드 우먼’에 대한 공포를 만들었다. 옷 속에 총을 숨겨 남자들을 어두운 매복로로 이끄는 젊은 여성 이미지는 1948년 ‘여수·순천 10·19 사건’(여순사건) 때 여학생들이 치마 속에 총을 숨겼다가 군인들을 사살했다는 ‘환상의 여학생 부대’라는 가짜 뉴스를 떠올리게 한다. 여순사건의 강렬한 이미지를 만든 저런 류의 날조 기사는 역사적 파시즘 체제가 남긴 잔여물인 셈이다. 저자는 “스파이 담론의 만연은 사회의 파시즘화를 보여주는 징후”라고 했는데, 이는 12·3 계엄 당시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했던 윤석열의 담화문 또한 연상시킨다.
청년의 문제를 보자. 식민지 파시즘화를 수행하는 최전선에 배치된 ‘청년’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적인 근대 엘리트 모두를 거부하는 정체성이다. 근대적 지식인은 ‘퇴폐 분자’, ‘기회주의적 태도’로 표상되며 비난받는다. 오늘날 한국의 ‘청년 담론’이 어떤 성별과 세대와 인종을 포함하고 배제하는가 하는 문제와도 연관지어 생각해 봄 직하다.



식민주의 담론의 전형적인 패턴을 보여준 ‘대동아 민족지’(동아경제간담회 엮음, 1943) 갈무리 제공





남방에 대한 이국적 취향을 담은 시에서 자주 발견되는 “벌거벗은 검둥이 여인아” 같은 표현은 남방 종족지가 그려낸 남방 여인에 대한 이미지에서 비롯됐다. ‘대동아 민족지’(동아경제간담회 엮음, 1943). 갈무리 제공


인종주의는 일본 제국이 구상한 ‘대동아 담론’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동아시아 가족’에서 일본은 아버지이며 아시아 각국은 ‘제국의 아이들’로 서열화하는 가족국가주의 담론을 가리킨다. 인종위계적인 일본의 남방 민족지는 조선이 남방을 원주민, 야만인, 야자수 아래 ‘깜둥이’로 이미지화하는 데도 큰 영향을 끼쳤다. 남방 국가에 대한 조선인들의 우월감 또한 오늘날 외국인 노동자나 결혼이주 여성이 겪는 비극적인 일들과도 교차해서 고민할 거리를 던진다. 특히 당시 중국적인 것은 조선에 들러붙어 있는 병적인 것, 암세포, 바이러스, 병균 그 자체로 간주되었다. 이런 담론 또한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작동하는 혐중, 증오의 정동과 강한 관련성을 발견하게 된다. 파시즘적 광기의 기원이랄까, 오늘날 한국 사회 혐오의 뿌리까지 내려가 파시즘 체제가 만든 정동을 파헤치는 저자의 끈기와 절실함이 독자에게 번뜩이는 깨달음과 영감의 순간을 선사한다.
저자 권명아 교수는 한겨레와 전화 인터뷰에서 “그 시대의 ‘역사적 파시즘’은 지금 우리의 현재와 멀지 않고 일상화된 방법으로 우리 안에 내재화돼 있다. 개정증보판을 통해 오늘날의 사회적 맥락에서 더 예각화하여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기자 admin@no1reelsi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