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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선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김선희 교수. 스승의 정년 퇴임을 축하하기 위해 국내외 유명 발레단에서 날아온 제자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발레를 부산 직장 시작하고 10여 년은 ‘콩쿠르 킬러’처럼 날아올랐고, 다음 10년은 좌절해 캄캄했고, 마지막 30년은 뒤로 보이는 빛나는 ‘K발레 황금 세대’를 길렀으니 제 인생은 해피 엔딩입니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11~1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발레의 별빛: 글로벌 발레 스타 초청 갈라 햇살론 대환대출 자격 공연’을 본 관객들은 귀하고 드문 춤을 경험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궁중음악을 발레로 표현한 ‘수제천’(안무 조주현)부터 윌리엄 포사이드가 안무한 모던발레 ‘블레이크 웍스3′, 사별한 남편을 그리워하는 창작 발레 ‘코리아 이모션 정(情)’ 등이 끝날 때마다 환호와 박수, 탄성이 번졌다. 애정이 가득한 공기에 무용수들도 고무됐다.
파리 오 토지담보대출금리 페라 발레단 에투알(수석) 박세은, 네덜란드 국립 발레단 수석 최영규, 보스턴 발레단 수석 채지영, 유니버설 발레단 수석 이현준, 국립 발레단 수석 박예은 등 국내외 정상급 발레단에서 활약하는 무용수 23명이 시즌 중에도 시간을 내 이곳으로 날아왔다. ‘황금 세대’로 불리는 이들은 모두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김선희(66) 교수의 제자. 스승의 정년 퇴임을 본인명의 휴대폰 특별한 공연으로 축하한 것이다. 세계가 주목하는 K발레의 폭과 깊이를 목격할 수 있는 무대라 일찌감치 입장권이 매진됐다. 박세은은 이렇게 말했다.
“김선희 교수님은 해외에 ‘소냐’로 알려져 있어요. 프랑스 신문 르피가로 기자가 ‘지금의 한국 발레를 만든 소냐를 인터뷰하고 싶다’고 할 정도로요. 교수님은 테크닉과 예술성을 갖춘 무용수로 성 신용관리사 장하도록 저희를 이끌어준 분, 세계로 도약하는 문을 열어준 분입니다.”
무용계 아카데미상이라는 ‘브누아 드 라 당스’ 수상자를 둘(박세은과 마린스키 발레단 수석 김기민)이나 제자로 뒀지만 스승의 인생은 좀처럼 알려지지 않았다. 세상에 저절로 되는 일은 없다. K발레 황금 세대의 화려한 점프와 회전, 섬세하고 우아한 표현력 뒤에서 그들을 세계적 무용수로 조련한 김선희 교수는 누구이며 어떤 방향과 속도로 걸어 왔을까. 지난 6일 한예종 서초동 캠퍼스에서 ‘소냐’를 만났다.



미국 보스턴발레단 수석 무용수 채지영(가운데)과 이선우, 이상민이 출연한 '블레이크 웍스3' /케이글로벌발레원(사진작가 김윤식)





김선희 교수의 제자로 '브누아 드 라 당스'를 수상한 박세은과 김기민. 발레 '라 바야데르' 2인무 /국립발레단


◇또래들이 두려워한 ‘콩쿠르 킬러’
발레 입문은 열 살 때였다. 김선희 교수는 “이화여대 무용과를 졸업한 엄영자 선생님이 발레 학원을 열었는데 어머니가 저를 데려간 게 시작이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재능도 있었나요?
“할머니가 ‘너는 아주 어릴 때부터 낙지 같았어’ 하셨지요. 몸이 유연했어요. 제가 조르지는 않았고, 흥이 있던 어머니한테 떠밀려 발레를 시작한 셈입니다. 책임감이 강해서 어떤 역할을 맡기면 잘 해내는 편이었어요.”
-콩쿠르에도 나갔겠군요.
“1년간 기본기를 익히고 대회에 출전했는데 몇 년 더 배운 아이들을 제치고 1등을 했어요. 중·고교 시절에는 이화여대 콩쿠르에서 해마다 최고상을 받았고요. 또래들에겐 욕을 진탕 먹었습니다(웃음). 그런데 저는 대회에 나가고 싶어서 나간 게 아니에요. 말하자면 엄영자 선생님의 마스코트 같은 존재였어요.”
-마스코트요?
“스승은 남보다 잘 가르친다는 것을 제자의 성적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1등 자리를 빼앗길까 봐 김선희를 계속 내보내 존재 증명을 한 거예요. 출전하는 족족 트로피를 가져가니까 저를 다 싫어했죠. 이화여대 진학 후 동아 무용 콩쿠르에서도 금상을 받았어요.”
-실례지만 키가 어떻게 됩니까.
“156㎝요. 당시로도 작았고 지금은 발레를 할 엄두도 못 내는 키죠. 아마추어라면 몰라도 프로를 꿈꾼다면 염치없는 짓이에요, 하하. 성장할 시기에 발레를 하느라 잘 못 먹었어요. 학교에서 학원으로 직행했다가 지쳐서 집에 오면 자기 바빴죠.
-발레를 향한 열망이 뜨거웠나요?
“멍석 깔아주면 실력이 나왔을 뿐, 그렇게 뜨겁진 않았어요. 저는 실전에 강했습니다. 막이 올라갈 때 객석에 사람들이 꽉 차 있으면 떨리기는커녕 그 기운을 받아 더 잘했어요. ‘콩쿠르 킬러’로 불렸지요.”
-킬러? 세상이 만만해 보였겠군요.
“미국 유학 가기 전까지는요. 발레의 사회적 지위가 낮을 때였습니다. 대학 졸업하자마자 국립 발레단에 입단했지만 ‘유학 다녀와서 대학교수로 성공하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어요. 발레로 행복해질 것 같은 코스였지요.”



김선희 교수의 열쇠 꾸러미. "제가 늘 열쇠 꾸러미를 들고 다녔어요. 복도를 걸어오는 소리가 났대요, 짤랑짤랑. 그럼 학생들은 가슴이 철렁철렁, 겁이 나서 연습실 바에 달라붙었다고(웃음). 가르쳐준 동작이나 표현을 정확하게 안 하면 제가 야단을 치니까 무서웠대요."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우물 안 개구리’ 뉴욕에서 좌절하다
국립 발레단에서 코르 드 발레(군무진)로 8개월 춤추다 1981년 미국 뉴욕대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오래 구상한 점프였지만 착지는 불안했다. “한국에선 10년 넘게 정상에 있던 제가 미국에 가자마자 쇼크(충격)를 먹었다”고 했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뉴욕 링컨센터에서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BT) 공연을 봤는데 영화 ‘백야’의 미하일 바리시니코프와 전설적 무용수 나탈리아 마카로바가 남녀 주역이었어요. 맙소사, 그들의 발레는 제가 해온 발레와 현격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수준이 높았어요.”
-꽤 스트레스를 받았겠군요.
“(고개를 끄덕이며) 어떻게 저렇게 잘하지? 물음표가 많아지는 괴로운 나날들이었습니다. 졸업 공연에선 제가 주역을 맡았지만 그건 대학 무용과일 뿐이었고요. ABT 프로의 수준과는 격차가 너무 컸어요.”
-그때 무슨 생각을 했습니까.
“자신감이 떨어져 자문했어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저는 우물 안 개구리였습니다. 미국으로 망명한 바리시니코프와 마카로바가 보여준 기름진 동작이 별빛처럼 아득하게 보였지요.”
-인생에서 처음 겪는 시련이었겠습니다.
“바닥 모를 좌절감을 느꼈어요. 1984년 8월 한국에 돌아올 때까지 3년이 정말 고통스러웠습니다. 열패감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쓸쓸히 귀국했지요.”
-이화여대 강사가 돼 후배들을 가르쳤다면서요.
“모교 스승이 ‘미국에서 얼마나 배워 왔는지 보자’며 많은 기회를 주셨어요. 그런데 또 길고 어두운 추락을 경험했지요.”
-또요?
“목표를 ‘내가 마카로바처럼 출 순 없지만 내 제자들은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로 수정한 상태였습니다. 그런 이상에 비해 현실은 낙폭이 컸어요. 저보다 신체 조건이 좋은 발레리나들을 5년이나 가르쳤는데 마카로바의 춤은커녕 엇비슷하게도 안 나오는 겁니다. 무용이 싫어졌어요.”



제자들을 벌벌 떨게 한 ‘열쇠 꾸러미’를 들고 웃는 김선희 한예종 교수. “지금 세계에서 활약 중인 한국 주역 무용수들이 앞으로 10년 이내에 지도자가 돼 그 나라 발레와 문화, 인맥을 가지고 들어옵니다. 한국 발레 인프라가 더 성숙해지면 좋겠어요. 정년 퇴임 후에도 제 경험이 필요한 곳이 있다면 어디든 달려가 도울 겁니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발레와 헤어질 결심
정나미 떨어진 발레와 이별할 결심을 했다. “인생에서 가장 불행한 시기였어요. 저는 무용도 못해, 제자도 못 길러, 돈도 없어, 안무작도 탈락해, 결혼도 못 해….”
-결혼은 왜요?
“한 남자를 만났는데 ‘춤추는 여자랑 결혼을?’ 이러는 거예요. 어릴 적부터 서른 살 넘도록 발레에 인생을 걸었는데 문전박대를 당한 꼴이라 기가 막혔죠. 발레가 나를 이토록 불행하게 하다니.”
-큰 배신감을 느꼈겠군요.
“이 길이 아닌가 보다, 발레는 원 없이 했으니 그만하자! 1990년 여름이었어요. 마음을 정리할 겸 소련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저를 주눅 들게 한 바리시니코프와 마카로바를 배출한 나라로. 여행 금지국이었는데 궁리하는 동안 마침 한·소 수교가 이뤄졌어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바가노바 발레 아카데미’로 갔습니다.”
-마린스키 발레단의 부속학교죠?
“네, 외국인에게는 2년짜리 프로그램이 있었고, 학생 비자를 받아 참관을 하다가 지도자 수업을 받았습니다. 교장은 ‘미국에서 발레를 공부한 사람이라 받아줬다’고 했어요.”
-거기서 신세계를 보았습니까.
“제가 소련에 갈 땐 전부 버렸잖아요. 발레도 기대도 욕심도. 프랑스·영국·이탈리아 등 발레 강국은 다 가봤는데 소련에서는 아이들에게 발레를 어떻게 가르치는지 궁금하긴 했어요. 정말 신세계였습니다.”
-무엇이 어떻게 달랐나요?
“연령이나 단계에 따라 체계화된 발레 교육 시스템이 있었습니다. 당시 한국은 초등생에게 대학생 동작을 가르친다거나 중·고교생이 초등생 것을 배운다거나 주먹구구였거든요. 바가노바 발레학교를 4개월쯤 다니자 그 차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새로운 발레를 습득하는 것 같았어요.”
-좀 더 설명해주신다면.
“언어를 배운다고 생각해 보세요. 단어, 용례, 문장의 길이 등을 차례로 습득하잖아요. 발레도 그렇게 단계별로 익히면서 몸의 어휘력을 풍부하게 쌓아가는 거예요. 연령별로 정해진 범위의 동작을 가르치고 그것만으로 표현하게 합니다. 아이들 수준에서 최고의 예술을 뽑아내면서 스스로 만족할 수 있도록.”
-돌아보면 어떤 시절인가요.
“발레와 헤어지려다 거꾸로 발레를 새롭게 발견한 시기죠. 밤에는 학생증으로 마린스키 극장에서 공연을 봤습니다. 재미가 붙자 체류 기간이 늘어났고 의욕이 다시 샘솟았어요. 오늘을 있게 만든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습니다.”



한예종 김선희 교수와 이번 갈라 공연에 출연한 제자들. 박세은, 최영규, 채지영, 이현준, 이동탁, 홍향기, 이유림, 김명규, 박예은, 양채은, 한성우, 하지석, 이소정, 정재은, 윤별, 박소연, 이선우, 전준혁, 이상민, 김석주, 박선미, 전민철, 이윤주.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한예종에 이식, 결실까지 10년
1996년 한예종 무용원이 개원할 때 교수로 임용됐다. 바가노바 발레학교에서 배운 시스템을 한국 발레에 이식한 김 교수는 “세계적 수준까지 빨리 따라잡고 싶었다”며 “10년 정도는 해마다 방학 때 러시아에 가면서 격차를 줄여나갔다”고 했다.
-가장 큰 차이는 뭐였나요.
“유연하고 팔다리가 긴 아이들만 오디션으로 뽑아 철저하게 가르친다는 점이에요. 발이 땅에서 떨어질 땐 발등이 휘어야 하고, 다리는 끝까지 올려야 하고, 허리는 완전히 넘어가야 합니다. 그럼 3년째부터는 자연스럽게 돼요.”
-한국에선 그게 안 되나요?
“그렇게 엄격한 조기교육은 없었어요. 부족한 아이들을 탈락시키지도 않았고요. 국내에선 2008년 예술영재교육원이 생기면서 체계적 조기교육이 가능해졌습니다.”
-제자는 모두 몇 명쯤 될까요.
“한예종 발레 신입생은 해마다 13명씩 뽑고 영재교육원 제자들까지 합치면 400명쯤 될 것 같습니다. 그중에 프로 발레단 현역 무용수는 20여 국 60명 정도고요.”
-제자들은 교수님을 ‘겁나는 열쇠 소리’와 ‘무서운 호랑이’로 기억하는데.
“제가 늘 열쇠 꾸러미를 들고 다녔어요. 복도를 걸어오는 소리가 났대요, 짤랑짤랑. 그럼 학생들은 가슴이 철렁철렁, 겁이 나서 연습실 바에 달라붙었다고(웃음). 가르쳐준 동작이나 표현을 정확하게 안 하면 제가 야단을 치니까 옛날엔 무서웠다는데 이젠 ‘종이호랑이’라 귀엽대요, 하하. 틀린 것을 바로잡아주는 게 선생이잖아요.”
수업 중 오줌을 싼 학생도 있었다. ABT 솔리스트 한성우는 “교수님은 모든 동작과 라인, 고개부터 손가락, 발가락까지 어디에 가 있는지 1초도 놓치지 않았다”며 “발레의 현미경 같은 그 트레이닝 덕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했다.
-정년 퇴임하면서 감사할 분이라면.
“제가 남학생까지 실기를 가르치긴 어려웠습니다. 발레 동작의 세밀한 차이를 좁히기 위해 러시아 선생님들을 한예종으로 초빙했어요. 마린스키 발레단 주역으로 활약한 블라디미르 킴, 마르가리타 쿨릭 부부가 2003년부터 10년간 한예종 학생들을 훌륭하게 지도해 주셨습니다. K발레 황금 세대의 등장과 시기가 겹쳐요.”
-2000년대 후반부터 한예종 학생들이 세계 정상급 발레 콩쿠르들을 휩쓸기 시작했지요.
“국제 콩쿠르 수상 실적은 수백 회, 다 셀 수 없을 정도예요. 2010년 불가리아 바르나 콩쿠르가 제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습니다. 시니어·주니어 부문에 걸린 남녀 금메달을 4개 다 수확했거든요. 글로벌하게 도약하며 빛나는 결실을 본 제자들이 참 대견해요.”



2010년 불가리아 바르나발레콩쿠르 주니어 부문 남녀 금상을 받은 김기민·채지영의 ‘다이애나와 악테온’. 아래 사진은 시니어 부문 남녀 우승자인 박세은·김명규의 ‘돈키호테’. 현재 마린스키발레단에서 수석 무용수로 활약 중인 김기민은 "무용수도 가끔은 무너지고 상처받는다. 나탈리아 마카로바는 나를 ‘천재 무용수’라 불렀다. 내가 내 춤을 의심할 때 그 격려를 떠올린다”고 했다. /조선일보DB


◇“우리가 못 한 걸 너희는 하는구나!”
세계 메이저 발레단들에 주역급 무용수를 한국만큼 많이 수출한 나라는 드물다. 김선희 교수는 “피겨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따고 노벨문학상까지 받았지만, 한국 발레도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훌륭한 제자들을 모아 K발레의 위상과 품격을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한국 무용수들에 대해 가장 기억에 남는 평가라면.
“2016년 바가노바 콩쿠르에서 한예종에 재학 중이던 이상민·이수빈이 시니어 부문 남녀 1위를 차지했을 때예요. 남녀 2위는 바가노바 학생들이었습니다. 그때 바가노바 발레학교장이 한 말을 잊지 못해요. ‘소냐, 우리가 놓친 맥을 너희는 이어가고 있구나!’”
-북창동 순두부는 미국 LA 코리아타운에서 가장 맛있다고 하잖아요. 바가노바에서 배운 교육법으로 바가노바를 꺾었군요.
“정신이 번쩍 나게 해줘 고맙다는 뜻이었습니다. 과찬이었지만 절반의 진실은 있다고 생각해요.”
-바가노바 메서드를 응용한 김선희만의 비법이 있나요?
“한국 무용수들은 팔다리가 짧고 허리는 길어요. 다리만 보면 무릎 위와 아래의 비율이 외국 무용수들은 5대5라면 우리는 무릎 위가 더 깁니다. 그 약점을 커버하려면 춤을 출 때 발을 더 꺾어줘야 해요. 큰 얼굴도 무대에선 아름답게 보여야 하고요. 열등한 신체 조건을 숨기려면 어떤 각도로 어떤 라인을 만들어야 하는지 연구했습니다.”
-신체는 무용수마다 제각각인데.
“제가 자주 한 말이 ‘방금 깎아놓은 연필심처럼 보여야 한다’예요. 무용수마다 어떤 방향, 어떤 라인을 사용해야 더 예쁜지 분석해 알려줬습니다. 단점은 숨기고 장점은 극대화하고. 똑똑한 아이들은 금방 캐치해 더 진화시켜요.”



김선희 교수가 안무한 발레 '인어공주'. 한예종 학생들의 무대 경험을 위해 주역과 조역은 물론 코르 드 발레까지 최고의 테크닉을 구사하도록 동작을 구성했다. 2018년에는 미국 뉴욕시티센터에서도 공연했다. /김선희 제공


-최고의 발레단에서 주역으로 활약 중인 제자들은 떡잎부터 달랐나요?
“박세은은 그 세대에서 이 아이를 넘어설 발레리나는 없겠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신체 비율이 좋고 테크닉과 표현력도 단단했습니다. 보스턴 발레단의 채지영도 재능이 어마어마했고요. 힘들이지 않고 솟구쳐 허공에서 오래 머무르던 김기민은 일찌감치 마린스키의 왕자가 됐습니다.”
-김기민·박세은이 ‘브누아 드 라 당스’를 받았을 때 기분은.
“기쁘고 부러웠죠. 콩쿠르는 등용문이고 진짜 발레 인생은 프로 무용단에서 시작됩니다. 발레는 수명이 짧은 예술이에요. 그들이 부러웠던 건 단순히 ‘브누아 드 라 당스’를 받아서가 아녜요. 무용수로서 저는 불운했지만 제자들은 환경이 좋을 때 태어나 신체 조건도 낫고 잘 배웠고 글로벌하게 경쟁하며 관객의 사랑을 받은 데다 당대 최고의 무용수라고 세계가 공인했기 때문입니다.”
-크게 성공한 제자들의 공통점이라면.
“다른 직업에도 적용될 것 같지만,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철저해요. ‘투 머치 성실‘이 몸에 배어 있습니다. 재능을 일찍 발견했고 의욕과 추진력이 강해요.”
-졸업한 지 10여 년 만에 스승 앞에 선 그들이 뭐라고 하나요.
“리허설을 시작했는데 잠이 안 온대요. 오랜만에 선생님 앞에서 춤출 생각을 하니 떨린대요. 실수해도 야단치지 말래요(웃음).”
마지막으로 무용수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건 뭘까. “모스크바 콩쿠르 때 볼쇼이 발레단 엘리베이터에서 들은 말을 전할게요. ‘이제 우리가 발레 배우러 한국으로 가야 하나?’ 자부심을 가지되 멈추지 말고 자기관리 철저히 하면서 더 나아가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세계 발레계의 엔진이에요, 엔진!”